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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마태복음 23:33-39

3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샬롬^*^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설을 퍼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병자를 보면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시는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독설을 퍼부었을까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런 독설을 들어야 했을까요?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서기관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공식적인 율법 교사의 위치에 있었고 율법을 연구하고 교육을 전담하면서 동시에 율법 준수에 철저했던 자들입니다.

 

서기관은 원래 성경을 필사하는 직책이고 문서를 생산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완전히 필사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성경을 베껴 쓸때 오류가 발생하지 않고 원본이 그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하면 최고의 율법학자이자 동시에 유대사회에서 전문적인 율법 지식을 가진 최고의 지식인으로 존경을 받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Pharisees)들은, '분리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그들 스스로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잘 지키며 살아보자고 뭉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대충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잘 지켜보자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려고 했던지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안식일에 얼마 이상의 거리를 걷지 말아야하는지, 안식일에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이 일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연구할 정도였습니다.

 

출애굽기 35:3

3.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추워도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적들이 안식일에 쳐들어오면 가만히 앉아 죽을지언정 뛰어 도망가거나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대로 살려고 율법을 철저히 연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우리 예수님은 그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토록 싫어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이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바대로 행하고 지키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오히려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의 교훈들은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셨지만, 주님이 책망하신 것은 그들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언행일치가 안 되는 이율배반적인 삶의 태도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라고 일곱 번을 책망하시고 오늘 본문에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지옥의 판결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33).”

 

그들이 심판받아야 할 이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과 예수님께서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냈지만 이들이 그들을 거부한 것입니다. 오히려 채찍질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조상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하여 그 기원을 아벨에게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요아스 왕 시대에 왕의 명으로 야훼의 전 뜰 안에서 백성들에게 쳐 죽임을 당한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의인과 선지자를 죽인 모든 죄악이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강하게 책망하고 독설을 퍼부었을까요?

 

그 근본 동기는 사랑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 애통하는 마음이 있기에 이렇게 독설을 퍼부으면서 그들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해 주신 것입니다.

 

이들이 돌이키기를 원하는 근본적인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침묵하지 않으시고 분노하시고 질책하시는 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의 성품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애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마태복음 33:37

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품으면 독수리의 어떠한 공격에도 새끼들은 안전할 수 있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부화하기 위해 대략 3~4주 동안 품속에 알을 품습니다. 이때 어미 암탉의 체온은 40도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미 암탉은 천적의 공격에 몸이 찢겨도 새끼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그렇게 품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길로 뛰쳐나갔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이 짧은 본문을 통해 자기 백성 예루살렘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애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그가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을 그 품 안에 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 백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시는 선지자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황폐를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33:33

33.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너희 집이라고 하신 곳은 예루살렘과 아울러 그 중앙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성전은 황폐되어 버린바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예수님의 품으로 모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모음 같이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 품으로 모으시고 어떠한 원수의 공격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원하지 않는 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의 삶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품에 안기고 주님의 품 안에 거하는 삶을 산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원수 마귀가 대적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품 안에서 안전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품 안에 안전하게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독설과 책망도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하는 질책이고 돌이키기 위함임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의 구원으로의 초대를 거부하면 그 끝은 황폐한 멸망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의 품을 거부하지 않고 주님의 품 안에 안전하게 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제목

암탉이 그 새끼를 모을 때 어미의 품에서 안전함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품 안에서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핵심 요약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에수님의 질책은 그들이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예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채찍질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들을 질책하시고 돌이키기 위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한 끝내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거부한 이들에게는 예루살렘 명망이라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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